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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2020년 2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및 전시회 개최

신사참배 강요를 단호히 거부한 선교사 조지 새넌 맥큔

김헌규 | 기사입력 2020/01/31 [09:51]

독립기념관, 2020년 2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및 전시회 개최

신사참배 강요를 단호히 거부한 선교사 조지 새넌 맥큔

김헌규 | 입력 : 2020/01/31 [09:51]

▲     ©[George Shannon McCune, 윤산온尹山溫- 1873. 12. 15. ~ 1941. 12. 4. / 미국]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조지 새넌 맥큔을 2020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 제5․6관 통로에서 2. 1부터 2. 29까지 한 달간개최한다.

 

조지 새넌 맥큔George Shannon McCune, 윤산온尹山溫)은 1873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났다.

 

1905년 9월 아내 헬렌 베일리 맥아피Helen Bailey McAfee와 함께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왔다. 평양에 자리를 잡은 그는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숭실학교의 교장인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를 도와 한국인 학생을 가르치며 숭실학교와 교회에서 활동했다.


맥큔은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키고 일본 경찰의 가택 수색을 거부하며 일본 경찰에 체포되지 않게 보호했다.

 

그리고 3·1운동 당시 자신이 목격한 일제의 탄압을 미국『컨티넨트The Continent』잡지에 게재하여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다.

 

이뿐 아니라 1920년 9월 1일 방한한 미국 의원단에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보이기 위해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광복군총영 소속 신성학교 학생 박치의朴治毅가 사형판결을 받게 되자 이를 변호했다.


 이러한 일들로 ‘극단적 배일자排日者’로 분류되어 일제의 감시를 받던 맥큔은 잠시 한국을 떠났다가 1928년 다시 돌아와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의 교장직을 겸했다.

 

교장으로 재임하던 중 일제가 신사참배를 계속 강요하자 1936년 1월 18일 ‘기독교의 교리와 양심상 자신이 신사참배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참배를 시킬 수 없다’는 최종 답변을 교육 당국에 제출하고 결국 교장직에서 파면 당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비판하는 강연과 논설 기고 등을 지속하다 1941년 12월 서거했다.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주요 공적

ㅇ 1905 선교사로 입국
ㅇ 1919 3·1운동 지원
ㅇ 1928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장 취임
ㅇ 1936 숭실전문학교 학생들에 대한 신사참배 요구 거부
ㅇ 1963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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