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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천안 잃어버린역사를 찾아서]봉선홍경사&천흥사 동종

-200칸 거찰 홍경사, 터만 남아 고려 사찰 천흥사도 크게 쇠락

김헌규 | 기사입력 2019/06/26 [10:42]

[기획,천안 잃어버린역사를 찾아서]봉선홍경사&천흥사 동종

-200칸 거찰 홍경사, 터만 남아 고려 사찰 천흥사도 크게 쇠락

김헌규 | 입력 : 2019/06/26 [10:42]

-조각나고 흩어진 기와들…화려했던 시절을 추억하다.

-몇 안 남은 유물들 높은 가치 그 중 홍경사 비갈 국보 제7호

▲ 홍경사터에 남아있는 국제 제7호 봉선홍경사 사적갈비(왼쪽 사진)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 천홍사 법종. 천안시 제공


천안 시 관내에 있던 유적이나 문화재는 역사적으로 여러 변란과 격동의 일제강점기, 6·25전쟁과 시가 개발사업을 하면서 유실되거나 사라진 문화재가 상당히 많이 있다.

 

사라진 많은 유적이 있지만 지면에 한계가 있어 비교적 규모가 큰 것들만 고찰해 보려한다.
천안의 역사에서 사라진 문화재(유적지)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

1. 홍경사 (弘慶寺)

홍경사는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홍경원(弘慶院)이라고도 한다.
1021년(현종 12)에 여행자의 보호 및 편의 제공을 위해 창건했으며, 수행을 위한 장소로 보다는 원(院)의 성격이 많았던 사찰이다.

 

이 절이 세워진 성환역 부근은 교통의 요충지였지만, 인가가 멀고 갈대가 우거져 도적이 자주 출몰해 행인이 불편을 겪던 지역이라 현종이 형긍에게 명하여 절을 세우게 했다.

 

창건 당시 득총(得聰)·장림(藏琳) 등이 형긍을 도왔으며, 현종은 강민첨(姜民瞻)·김맹(金猛) 등을 별감사로 삼아 함께 일을 감독케 했다.

 

1016년부터 1021년까지 200여 칸의 건물을 세우고 봉선 홍경사라고 사액(賜額)했으며, 절 서쪽에 객관(客館) 80칸을 세워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이라 명하고, 숙소와 양식과 말 먹이 등을 마련해 행인들에게 제공했다.

 

1130년(인종 8) 8월 묘청(妙淸)의 말에 따라 이 절에서 아타파구신도량을 27일 동안 개최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 도량은 아타파구위 대장군, 즉 광신귀신 대장(曠神鬼神大將)이 말한 다라니를 외워 재난을 물리치기를 기원했고, 강종 때에도 이 절에서 법회를 열었으며 이때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도량문(道場文)이 전해지고 있다.

 

1177년(명종 7) 3월에 망이(亡伊) 등이 이 절을 불태우고 승려 10인을 죽였으며, 주지승이 핍박을 받는 등 변을 당했다.

 

조선 초기에 절은 폐허가 되고 원만이 남았으므로, 절 이름을 홍경원이라 불렀다고 한다. 1026년에 최충이 지었던 봉선홍경사기를 새긴 비갈(碑碣:비석)만이 남아 국보 제7호로 보호되고 있다.

2. 천흥사(天興寺)
천흥사(天興寺)는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성거산(聖居山)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던 사찰이지만 지금은 터와 천흥사지 5층석탑, 마을 안에 당간지주와 주변에 기와편만 남아 고스란히 옛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현재 절터에는 천흥리 마을과 1959년 천흥지가 만들어 지면서 많은 유적지가 유실됐다.
이런 보물급 문화재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다행히도 현재 남아있는 것은 천흥사지 5층석탑(보물 제354호), 천흥사지당간지주(보물 제99호), 천흥사범종 등이다.

천흥사진 5층석탑은 통일신라 때 형식으로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터에서 발굴된 천흥사 동종에 새겨진 제작년도가 1010년(고려 현종 원년)이라하니 이 탑 역시 이즈음 제작된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1966년 해체 복원할 때 부근에서 옥개석이 발굴돼 함께 복원했다.

 

당간지주 역시 기단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흥사 동종(1010년 고려현종1년)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사찰에는 커다란 종을 걸어 놓은 종각이 있다. 종각에 걸린 커다란 종이나 전각 내에 있는 작은 종을 일러 모두 범종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범종을 사물(四物)이라고 하는데, 사물은 부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소리를 통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네 가지 의식구를 말한다.

 

법고는 땅 위에 있는 중생을, 목어는 물에 사는 중생을, 운판은 하늘을 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 소리가 지옥까지 울린다고 하는 범종은 땅속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의식구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천흥사 범종’(天興寺 梵鍾)은 이러한 전형적인 한국 종의 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고려시대 동종이다.

 

종을 거는 고리는 용의 모습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용뉴라고 한다.

 

용 옆에 있는 원기둥 모양의 것은 음통(音筒)으로 5단으로 구획된 표면이 꽃무늬로 장식돼 있다. 종의 상부와 하부에는 한 줄의 띠를 두르듯이 공간을 나누어 꽃무늬로 꾸몄다.

 

종신(鍾身) 상부에는 네 군데에 사다리꼴 모양의 곽을 만들어 9개의 연꽃봉오리 장식을 덧붙였다. 하부에는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撞座)와 하늘을 나는 듯 한 비천상을 교대로 배치했다.

 

또한 종신에 위패 모양을 만들어 그 안에 ‘聖居山天興寺鍾銘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천흥사종, 1010년 제작)’이라는 명문을 양각했다. 이 명문에 의해 ‘천흥사 종’이 1010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위패 모양 장식은 고려시대에 새로 나타난 형식이어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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