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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2019년 5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및 전시회 개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김 규 식, 김 순 애 부부

관리자 | 기사입력 2019/05/01 [15:58]

독립기념관, 2019년 5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및 전시회 개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김 규 식, 김 순 애 부부

관리자 | 입력 : 2019/05/01 [15:58]

▲  독립기년관 겨례의 탑

 

▲ [金奎植, 1881. 1. 29. ~ 1950. 12. 10. 부산]

[金奎植, 1881. 1. 29. ~ 1950. 12. 10. 부산]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규식, 김순애를 2019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김규식과 김순애 사진 등 11점의전시회를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이달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개최한다.

 
 김규식은 1881년 1월 29일 경남 동래에서 양반 관리의 자제로 태어났다.

부친의 유배로 인해 선교사 언더우드가 세운 고아학당에서 신학문을 교육받았고, 독립협회 활동과 독립신문 제작에 참여하여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
 
189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우수한 성적으로 로녹대학Roanoke College을 졸업한 후, 귀국하여 계몽운동을 벌였지만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은 점차 어려워졌다.

이에 김규식은 적극적인 항일 투쟁을 위해 1913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외국어에 능통했던 김규식은 1919년 초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되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에는 외무총장 자격으로 일제 침략과 식민지 통치의 실상,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세계에 알렸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임시정부의 부주석이었던 김규식은 김구 등과 함께 귀국하여 남북 단독정부 수립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950년 6․25 전쟁 중에 납북되어 그해 12월 10일, 평북 만포진 부근에서 서거했다.

 김규식 공적   ○ 1919 파리강화회의 대표,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총장
                 ○ 1933~1935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부주석
                 ○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金淳愛, 1889. 5. 12. ~ 1976. 5. 17. 황해도 장연]

[金淳愛, 1889. 5. 12. ~ 1976. 5. 17. 황해도 장연]
김순애는 1889년 5월 12일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서 출생했다.

정신여학교에서 신학문을 공부한 김순애는 민족계몽을 위해 교육활동을 펼치다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오빠인 김필순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9년 1월 김필순과 막역했던 독립운동가 김규식과 결혼한 후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에 가입하였고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 파견된 민족대표의 활동자금 모집과 독립운동 봉기 촉구에 주력했다.

 

 김순애는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와 지원을 목적으로 상하이에서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국내외 애국부인회와 긴밀하게 연계하며 한국독립운동 선전활동을 펴는 데에도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1945년 조국 광복을 맞이한 이후, 김규식과 함께 귀국하여 여성교육에 공헌했던 김순애는 1976년 5월 17일 영면하였다.


 정부는 민족의 독립과 통합을 위해 헌신한 부부의 공적을 기려 1977년 김순애에게 독립장을, 1989년 김규식에게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순애 공적   ○ 1919 상해 대한애국부인회 회장, 상해 대한적십자회 참여
                   ○ 1926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제후윈회 참여
                   ○ 1943 한국애국부인회 회장
                   ○ 1977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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